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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레미] 안전장치

너만이 존재하는 기억 속 나


 

 

 

 

 

 

 

본 포스트에는  COC 시나리오 [코끼리 무덤] 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시나리오의 플레이를 예정중인 분에게는 열람을 금합니다.

 

 

 

 

 

 

 

 


 

우리 손으로 멸망시킨 인간에게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기억하고 추억하는 힘이 있었어.

때로는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일기에 적기도 했고, 마치 나처럼 말이야.

어찌되었든 그들도 하나의 지성체였으니까. 많은 부분이 닮아있을수밖에 없지.

매 순간의 기억을 광채에 담아 무엇보다도 뚜렷하게 기억하는 기능.

하지만 기억하기 싫은 사건이 있다면?

떠올릴때마다 고통스럽고... 차라리 지워졌으면, 더는 떠올리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기억.

안타깝게도 이런 기억들은 쉽사리 잊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오히려 즐거운 기억보다 더욱 강하게 새겨져 정신을 무너트려놓는 일이 빈번하지.

그렇지만 몇몇의 경우엔 일종의 '안전장치'가 작동하기도 해.

괴로웠던 기억의 일부를 왜곡시켜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하기도 하고.

정말 극단적인 경우는 아예 그 순간을 망각시켜서 몸을 보호하기도 하는거야.

 

나는 궁금했어.

인간의 염원으로 태어난 존재인 나는 그런 안전장치가 있었을까?

누구보다 왜곡되지 않은 정신과 중립적인 입장에서 모든 기억을 조각했던 나로썬,

아무리 싫은 순간이라도 정면에서 마주하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한이 있더라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겨두고

그 빛이 바래지 않게끔 계속해서 상기하여 불씨를 밝혀둬야만 하니까.

그 사명감은 내가 내 창조자들의 무대에서 벗어났을 때에도 변함없이 이어져 왔어.

솔직히, 사명감이 아니어도 즐거운 일이었는데 뭐.

남의 것이 아닌 내 추억을 새긴다는 일이 그렇게 즐겁다는 걸 깨달았지.

 

잃으리란 상상을 해본 적이 없어.

인간들은 저마다 수명이 존재하기에 항상 이별을 준비하며 살아간다는 글을 보았을 때에도,

인간들의 욕심과 무지함에 질려 무너지는 문명을 뒤로 한 채 창공으로 날아올랐을 때에도,

내가 기억하기만 하면 영원히 내 곁에 남아있을 줄 알았던 너란 존재에게 영원을 맹새했을 때에도,

기억하기만 하면, 기억하는 건 누구보다 자신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째서 기억나지 않는거야?

네가 죽었다는 것을 상기하려 할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목이 메스꺼워.

마치 온몸이 그러지 말라고 거부하고, 애원하며, 아우성 치는 것 같아.

희미한 빛조차도 남아있질 않아.

좋았던 기억들만을 계속 돌려보다 보니 나머지 부분이 바래버려서 남아있질 않아.

네가 돌아올때마다 하늘에 길게 남던 구름이 남아있질 않아.

세상이 온통 내 색으로만 가득해. 네 색이 남아있질 않아.

 

어째서 난 네 마지막조차도 제대로 기억 할 수 없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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